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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ktails

첫 잔은 진 피즈(Gin Fizz)

'처음 보는 바에 갔다면 진 피즈를 시켜봐라. 진피즈를 보면 바텐더의 실력을 알 수 있다.'

 

 똑같은 문장은 아닐지라도 칵테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 만화 '바텐더'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본 말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난 이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비스업인 바텐더의 직업적 특성상 바텐더와 고객사이에 갑과 을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맞지만 처음 가본 바의 수준과 처음 만난 바텐더의 실력을 진 피즈라는 칵테일 한 잔으로 평가하는 것은 다소 무례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허나 진 피즈를 만드는데 조주의 여러 기본기가 필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쉐이킹과 탄산을 더하는 것부터 진, 레몬, 설탕이라는 기본적인 사워 칵테일의 밸런스까지. 스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조주기법이 들어간다(이렇게 말하면 진 피즈가 바텐더의 실력을 평가하는데 가장 좋은 한 잔 같아 보이긴 한다만...) 어찌됐든 굳이 평가의 목적이 아니더라도 진 피즈는 처음 가는 바에서 시킬만한 첫 잔으로 손색이 없으며 그 맛도 훌륭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진 피즈라는 칵테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진 피즈의 역사

 

Jerry Thomas(1830-1885)

  진 피즈란 피즈(fizz) 칵테일의 한종류로 1876년 바텐더 제리 토마스(Jerry Thomas)의 'Bartender's Guide'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피즈라는 칵테일의 한 카테고리가 처음 정의된 것도 바로 이 책에서였다. 미국의 뉴올리언스 주에서 인기를 끌던 진 피즈는 금주법이 시행되었던 1900년에서 1940년 사이 미국 전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끊임없이 주문이 들어와 바텐더들이 팀을 만들어서 계속 번갈아가며 쉐이킹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진 피즈는 1950년 프랑스의 레시피북인 'L'Art Culinaire Francais'에 그 레시피가 실리면서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피즈(fizz) 칵테일이란?

 

피즈라는 단어는 탄산음료를 개봉할 때 나는 소리를 음성어로 나타낸 것이다(대부분의 음성어가 그렇듯 잘 공감은 되지 않지만). 위에서 말했듯 피즈라는 명칭을 처음 만들어낸건 바텐더 제리 토마스였다. 피즈류 칵테일들은 대부분 사워 칵테일(베이스+스윗+사워)+탄산수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며 그 대표적인 칵테일이 바로 진 피즈이다. 오리지널 진 피즈에 다른 재료를 첨가하면 새로운 이름의 칵테일이 되며 몇 개 예를 들자면

 

진+레몬+설탕+계란 흰자+탄산수=실버 피즈

진+레몬+설탕+계란 노른자+탄산수=골든 피즈

진+레몬+설탕+계란 흰자+계란 노른자+탄산수=로열 피즈

진+레몬+설탕+탄산수+크렘 드 민트 그린=그린 피즈

진+레몬+설탕+샴페인=다이아몬드 피즈(프렌치75)

진 피즈 바리에이션의 끝판왕 라모스 진 피즈

정도가 있겠다. 진 피즈 말고도 다양한 종류의 피즈들이 있다. 사워칵테일+탄산수의 형태를 가지는 피즈의 특성상 어떤 재료든 레몬과 설탕 그리고 탄산수와 만난다면 피즈 칵테일이 되는 것이다. 진 피즈에서 진이 아니라 보드카를 쓴다면 보드카 피즈, 에프리콧 브랜디를 쓴다면 에프리콧 피즈, 크렘 드 카카오를 쓴다면 카카오 피즈도 만들 수 있다. 

 

톰 콜린스와의 차이

 

 진 피즈에 대해 찾아본 사람이라면 아마 톰 콜린스에 대해서도 들어봤을 것이다. 톰 콜린스는 진, 레몬, 설탕, 탄산수로 만드는 칵테일로 진 피즈와 재료와 조주 기법이 똑같아 자주 진 피즈와 엮이는 칵테일이다(레몬 쥬스가 아닌 라임 쥬스로 만드는 진 리키라는 칵테일도 항상 이들과 같이 거론되지만 지금은 톰 콜린스에 대해서만 알아보도록 하자). 톰 콜린스는 기본적으로 올드 톰 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런던 드라이 진을 사용하는 진 피즈와 큰 차이가 있다. 올드 톰 진은 런던 드라이 진보다 단맛이 조금 더 부각된 진이며 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네덜란드 전통주, 쥬네버(Jenever)와 비슷한 맛이 난다. 

 톰 콜린스는 진 피즈와 맛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진 사워(진+레몬+설탕)+탄산수의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진 피즈와 달리 톰 콜린스는 올드 톰 진+레모네이드(레몬+설탕+탄산수)의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그렇기에 톰콜린스는 보통 진피즈보다 더 새콤하고 달콤한 맛이 강조되는 편이다. 톰 콜린스에서 중요한 것은 새콤달콤하고 맛있는 레모네이드지 레몬과 설탕, 탄산 사이의 밸런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 차이점들은 두 칵테일의 이론상 차이점들이다. 오늘날 두 칵테일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올드 톰 진이 거의 유통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부각되는 것으로 보인다. 

Tom Collins

진 피즈 레시피

 

 진 피즈라는 칵테일이 무엇인지 알아봤으니 이제 만드는 방법을 알아보자...라고 해야겠지만 이 재미없는 글을 여기까지 읽을 만한 사람이라면 아마 진 피즈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IBA의 공식적 레시피에는 이렇게 나와있다.

 

진 45ml

레몬 쥬스 30ml

시럽 10ml

탄산수 80ml

 

자신의 입맛에 따라 당도나 산도, 탄산수의 양을 조정할 수 있겠지만 이대로만 만들어도 상당히 훌륭한 진 피즈를 마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쉐이킹의 개념과 탄산을 지키는 방법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마치며

 

 그냥 내가 알고 있는 내용들과 알고 싶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순전히 '나'를 위한 글쓰기였는데 쓰다보니 독자에게 말하는 식의 글이 완성됐다. 내가 원했던건 좀 더 객관적인 정보글이었지만 이것 형식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것 같다. 

 몇달 전 바 씬(scene)에서 화제가 되었던 '진 피즈 사건'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는데 꽤나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칵테일과 바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그에게 눈 앞에 있는 바텐더와 바를 모욕할 권리가 주어지는건 결코 아니다. 그 사건으로 진 피즈라는 것을 처음 들어본 몇몇 사람들은 진 피즈가 정말 바텐딩의 정수를 담고 있는 궁극의 칵테일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당연히 진 피즈라는 칵테일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 피즈 뿐만이 아니라 모든 칵테일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완벽한 칵테일만을 칵테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누군가가 처음 만들어본 그의 인생 첫 진 피즈도, 내가 오늘 낮에 내 마음대로 흔들어서 만들었던 진 피즈도 모두 진 피즈다. 즐거워지기 위해 마시는 것이 술 아닌가. 그렇다면 즐겁게 마시도록 하자. 칵테일이란 그런것이다.